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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역사관 방문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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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간호역사관 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22-02-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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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최수현

 

전남대학교 병원이 위치한 학동에는 특별한 건물이 하나 있다. 전남대 건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728호로 등재된 의학박물관/간호역사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건물은 1948년에 착공하여 1951년에 완공되었다. 한국전쟁이 1950년 발발했으니 전쟁 중에도 모진 풍파를 겪으며 꾸준히 지어지고 있던 건물인 것이다. 과연 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건물은 본래 광주의과대학 본부 건물로, 이후에는 의과대학 본관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간호대학 건물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간호역사관은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립이 결정되어 20131128일에 개관하였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이렇게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건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전남대생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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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부터 2층까지는 의학박물관으로 구성되어있다. 3층에 위치한 간호역사관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곳 치고는 조금 작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알차게 꾸며져 있다. 상설전시실, 백학홀, 수장고가 있으며 우리는 상설전시실을 구경하기 전 백학홀에 모였다. 백학홀에서는 우리의 선배님이신 이현정 연구원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간단히 토론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전남대 간호대학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았는데 나는 우리 간호대학이 의과대학 소속이 아니라 단과대학이라는 것을 말했다. 대한민국에 정말 많은 간호학과가 있지만, 우리 전남대학교 간호대학은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몇 안되는 간호대학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에서부터 간호직이 전문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느냐 아니냐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학홀 벽 한쪽에는 졸업생들의 졸업사진도 걸려 있는데 약 3-4년 후에는 나의 사진도 이 곳에 걸려있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상설전시실은 크게 세 섹션으로 구성되어 역사존, 동창회존, 학교 및 학생 활동존으로 볼 수 있다. 우선 100년의 역사는 태동기(1912-1944), 성장기(1945-1985), 확장기(1986-2004), 비상기(2005-현재)로 나뉜다. 성장기는 다시 세세하게 구분하여 성장기(1945-1961)와 확립기(1962-1985)로 나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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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의 간호교육 역사의 시작은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세운 광주자혜의원 간호부 양성소가 그 시발점이다. 4명의 견습생으로 시작되었으며, 25년에는 운영권이 도청으로 옮겨가 전남도립광주의원 간호부 양성소로 개칭하였고 이후 다시 광주의학전문학교부속병원 간호부 양성소가 되었다. 이제와 돌이켜본들 아무 소용없지만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선 스스로 주권을 가진 나라로서 이 모든 게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조금의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겪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우리 외할아버지, 친할머니만 해도 35년생이시니 독립 전 10년 동안을 일제 치하에서 성장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일제강점기는 너무 역사 속 사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흑백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라고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을 돌이켜볼 수 있는 사진자료가 남아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간호학개론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얼핏 생각났는데, 그 당시 광주, 진주 등에 세워졌던 자혜의원은 일본 거류민 병원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 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들 가운데 앉아있는 남성이 누군지는 몰라도 험상궂은 일본인인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이때는 교육도 일본인 의사 밑에서 받고 일도 일본인 병원에서 주로 했을 때인데, 간호사가 의사의 보조로 취급되었다. 독일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간호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여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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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는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467월 간호부 양성소가 폐지되면서 많은 학교들이 간호고등학교로 개칭되었다. 우리학교 역시 46광주 의과대학 부속간호학교로 개명되었다. 또한 아직 법적으로는 간호부라고 불렸지만 간호계 조직 자체 내에서 간호부를 간호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교육의 수준은 점차 높아져 62년 초급대학 수준의 3년제 간호학교로 승격되어 30명의 입학생을 받았고, 72년에는 4년제 학사과정이 신설되었다. 1회 간호학사가 배출된 1976년에는 대학원 석사과정이 신설되어 호남지역에서 우수한 간호지도자를 육성하는 손꼽히는 간호교육기관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959년도에는 전남대학교 간호대학의 교지인 도라지가 출간된 바 있다. 이 시기의 간호계 변화를 조금 더 살펴보자면,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사가 교육을 받던 과거와 다르게 간호교육은 간호사(당시 간호원)에게 받자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57년에 최초로 김영숙(임상간호), 김옥실(보건간호) 동문이 교사로 임용되어 간호사에 의한 간호교육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역사관에서는 교과서로 쓰였던 서적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교과서로 쓰이는 책에 비하면 굉장히 작고 얇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을까. 아마 굉장히 많은 것들이 추가되었고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로 쓰여 있어 나는 절대 공부하지 못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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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익숙한 시대인 확장기에 들어서니 사진부터 컬러로 바뀌었다. 그 중 몇몇 사진에서는 교수님들의 얼굴을 찾아볼 수도 있다. 엄마께서도 간호사이시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이런 생활을 보내셨구나 하고 유추해볼 수 있었다. 전남대학교 간호교육은 3년제와 4년제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86년도에 간호학과로 일원화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97년도에 대학교육협의회 주관 전국 간호학과 평가에서 지방대학으로서는 최초로 학부와 대학원 모두 국내 최우수 간호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1996년 간호과학연구소 설립, 교육대학원 내 간호교육전공과정 신설, 1998년 박사과정 개설 등으로 전국적인 간호지도자를 배출하는 명성 있는 학교로 발돋움하였다. 더불어 2000년 간호과학연구소와 광주광역시의 관학협력으로 청소년정신보건센터를 개소하는 등 지역사회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98년도에 처음으로 남학생이 학부에 입학하면서 간호학이 여성의 필드라는 통념을 깨주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수업시간에 남학생들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여학생들의 비율이 훨씬 높긴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의 위치와 위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남녀 구분 없는 전문직으로서 더욱 공고히 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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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간호대학은 긴 역사만큼이나 걸출한 동문과 선배님들이 여럿 계신다. 물론 우리를 가르치시는 교수님들 중에서도 모교가 전남대학교이신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그 중에 이현정 연구원님께서 소개해주신 분은 양승숙 장군님과 두 분의 나이팅게일 수상자 조애형님, 남상옥님 이었다. 양승숙 장군님은 우리나라 첫 여성장군(준장)에다가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까지 맡으셨던 인물이다. 나이팅게일 기장은 간호사에게 특히 영예로운 국제적 표장이다. 나이팅게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20년부터 매 2년마다 스위스 적십자국제위원회에서 간호 분야에 공적이 큰 간호사를 선정하여 수상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나이팅게일기장 수상자는 1957년 이효정 간호사였으며, 전남대학교 출신이신 조애형 간호사가 1987, 남상옥 간호사가 2013년에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의미 있고 뜻깊은 애장품을 기꺼이 간호역사관에 비치할 수 있도록 기증해주신 선배님들이 대단하시다고 연신 되뇌게 되었다. 한쪽 벽면에는 과거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다양한 동문들의 사진이 벽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는데 이현정 연구원님께서 한 사진을 짚으며 말씀해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간호캡을 쓰고 있는 분들의 사진이었는데 이제는 간호캡이 사라져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이 간호캡으로 직급을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군인들이 별을 다는 것처럼 모자에 검은 줄의 수가 많아질수록 직급이 높은 분이라고 했다. 예전에 엄마가 갓 간호사가 되었을 때 사진을 보면 간호캡을 쓴 모습이 있었는데 그런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본인의 학창시절 얘기도 중간 중간 들려주셔서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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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드레스와 같은 의복이 역사관 한편에 놓여 있었는데 이 옷은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입는 옷이라고 한다. 모두가 이 옷을 입는 것이 아니고 작년에 졸업한 선배 중 실습이 가장 우수했던 학생이 대표로 입는 복장이라고 하셨다. 어찌 보면 간호학과의 수석이 입는 옷이니 입어보고 싶어도 맘대로 입어볼 수 없는 옷이다. 보통 다른 학교는 2학년이나 3학년 때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남대학교는 4학년에 진행한다고 한다. 나의 나이팅게일 선서식 때 저 옷을 입으시는 분은 누구일까, 그리고 우리 후배의 나이팅게일 선서식 때 저 옷을 입을 동기는 누가 될지 앞으로의 2-3년간이 학업에 달린 운명이다. 이 옷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모든 학교의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저 옷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졌었는데 아무래도 전남대학교만의 전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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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이렇게 많은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부량이 많은 간호학과 학생들이 공부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활동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 또 역대 간호실습복의 변천사도 볼 수 있다. 마침 실습복이 1년 전에 바뀌게 되어 가장 최근의 초록색 실습복이 같이 놓여져 있는데 시원하고 깔끔해 보이는 초록색이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든다. 지금까지 여섯 가지 디자인의 실습복이 탄생했으니 대략 10년에 한 번 정도 바뀌는 것 같다. 가장 앞에 진열된 하얀 원피스는 왠지 일제 강점기 시대를 담은 영화에서 본 듯한 그런 복장이었다. 복장이 계속 원피스였다가 2000년대에 들어 바지로 바뀌게 되었는데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게 느꼈을 것이다. 뒤편에 여러 명이서 실습복을 차려입고 단체로 찍은 사진이 몇 장 걸려 있는데 정말 정갈하고 멋지다. 소속감을 나타내는 유니폼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곳에 남학생 실습복도 추가 진열된다면 더 보기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전남대학교 간호대학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졸업메달이다. 이름은 메달이지만 사실은 배지인데 4년간의 숭고하고 수준 높은 공부를 치열하게 마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모교 마크는 영원한 애교심을, 은빛은 순결함과 청결을, 등불은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인류건강을 위해 첫 발을 내딛는 후배에게 선배가 달아주는 것이다. 이런 소소하지만 작은 것들이 선후배간의 유대감을 끈끈하게 하고 모교에 대한 사랑을 심어준다.


 

역사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광주만의 아픔이자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역사가 마지막에 남아있다. 바로 5.18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의 현장이 생생히 담긴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 본 적은 있지만 정말 어떻게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 참담하고 엄숙해진다. 전쟁통 같은 그 한복판에서 전남대학교 병원의 의료진들, 동문 간호사들은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은 없어진 간호대학 학생 기숙사 건물의 외벽에는 총탄이 박힌 흔적이 그 때 그 긴박함을 표현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다시 5월이다. 광주에 내려오기 전의 나에게 5월은 날씨 따뜻하고 찬란한 봄이었지만 광주에 내려와 곳곳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보니 광주 사람들에게 5월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전남대학교의 시작은 바로 이 곳 학동이었는데 용봉동이 주 캠퍼스로 자리 잡게 되고, 그나마 의대도 화순으로 옮기고 있는 형국이라 학동은 매우 조용하다. 물론 전남대학교 병원이 중심을 지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병원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간호대학만 덩그러니 여기에 남겨져 있다고 느껴졌는데, 역사관을 방문하고 난 후에는 간호대학이 이곳을 지켜야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 훗날 간호대학마저도 자리를 옮기게 되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에도 이 의학박물관/간호역사관만은 터줏대감이 되어줄 것이다.

역사관에 혼자 방문했다면 생생하고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물건 물건마다 담겨있는 스토리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이런 물건이 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한번 휙 하고 둘러보았다면 10분 만에 나왔을 곳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더 재미있었고 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이와 함께 당일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신 연구원님이 계셨기에 학교를 향한 애교심이 더 굳건해진 날이었다. 특히 1학년 신입생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한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듯, 전남대학교 간호대학생은 전남대 간호대학의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우리가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관을 잘 조성해주신 많은 선배님들과 교수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고서로나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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